[아버지날] 타이완 문단의 상록수, 100세 작가 왕딩쥔(王鼎鈞) 💯
Description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 2025년 하반기로 접어들 준비가 되셨나요? 8월이면 빠질 수 없는 날이 있죠. 바로 8월 8일 아버지날입니다. 숫자 ‘8(八)’의 중국어 발음이 아버지(爸爸)와 비슷해서 정해진 날인데요. 아버지날을 나흘 앞두고, 타이완 곳곳에서는 모범 아버지의 표창식이 열리고, 관련 할인 이벤트도 한창입니다.
타이완 문학에서 ‘아버지’ 하면, 주즈칭(朱自清)의 수필 <아버지의 뒷모습(背影)>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텐데요. 이 작품은 타이완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필독 수필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100년 전에 쓰인 글이지만, 늙은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귤을 사 들고 허둥지둥 왔다갔다하는 뒷모습은 아직도 독자들의 마음에 새겨져 있습니다.
타이완 원로 작가 왕딩쥔(王鼎鈞)은 2007년 홍콩의 《명보월간(明報月刊)》에서 <아버지의 뒷모습>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는데요. “신문학 작품(중국어 구어체로 쓰인 현대 문학)을 보면, 어머니를 다룬 작품은 많지만, 아버지를 묘사한 작품은 적고, 그 가운데 잘 쓴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다. 어머니는 사랑과 희생, 고통이라는 키워드만으로도 독자의 마음을 울릴 수 있지만, 같은 방식으로 아버지를 쓴다면, 같은 감동을 장담하기 어렵다. 전통적으로 아버지는 가족의 안정감과 체면, 그리고 사회적 성공까지 기대되는 존재다. 그러나 이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아버지는 흔치 않기에, 문학으로 다룰 만한 소재도 많지 않다. <아버지의 뒷모습> 속 아버지는 자식을 사랑하는 따뜻한 아버지지만, 사회적으로는 실패한 인물이다. 이 때문에 “주즈칭은 어떻게 아버지를 저렇게 쓸 수 있었을까?”하는 부정적인 시선도 있다. 이런 시선 속에는 자기 아버지도 같은 모습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숨어 있다.”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의 서툰 모습이나 약한 모습을 마주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큰 충격을 받게 되죠. 아버지도 결국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어른이 된 대가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왕딩쥔은 어떤 아버지일까요? 지난주 소개해 드린 ‘이아(爾雅)출판사 대표작 50권’ 중 그의 ‘회고록 4부작(《昨天的雲》,《怒目少年》,《關山奪路》,《文學江湖》)’이 4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외에도 저작 3권(《左心房漩渦》 、《碎琉璃》、《江河旋律》))이 리스트에 올라, 가장 많은 작품이 선정된 작가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사업 황금기에 미국 이민을 선택한 아버지이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사회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이상적인 아버지죠. 오늘은 80년 넘게 글을 써온 왕딩쥔 작가에 대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관련 프로그램:
반세기 동안 꽃피운 문학의 나무, ‘이아(爾雅)출판사’ 50주년
왕딩쥔의 회고록 4부작 - 사진: 보커라인
글쓰기는 배신하지 않는다 ✍️
<아버지의 뒷모습>이 발표된 1925년, 왕딩쥔은 중화민국령 산둥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지금 2025년을 살고 있는 그는 100세를 맞았습니다. 이 나이에 여전히 컴퓨더로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 믿기시나요? 더 놀라운 것은 올해 3월, 신작 두 권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겁니다. 하나는 그가 직접 작품을 골라 편집한 선집 《강하의 멜로디(江河旋律)》, 또 하나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후배 작가 청치펑(程奇逢)과 함께 쓴 공동 에세이집 《네 손의 협주(四手聯彈)》입니다. 정말 작가라는 직업에 하나도 부끄러움이 없는 문학의 실천자죠.
왕딩쥔은 여러 인터뷰에서 글쓰기의 자세를 강조해 왔는데요. “글은 명절에만 쓰는 것도 아니고, 아이가 결혼할 때나 일식과 월식이 있을 때만 쓰는 것도 아니다. 글은 낚시도 백화점 할인도 아니고, 매일 출근 도장 찍듯 써야 한다. 글쓰기는 애왕동물을 돌보듯, 안고 싶고, 만지고 싶고 보고 싶고, 그를 위해 일찍 집에 가고, 늦게 잠드는 일이다. 글쓰기는 가려움증이자 중독이다. 아침저녁으로 생각하고 마음속에서 수없이 되새기는 것이다.” 그에게 글쓰기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삶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성실함이 기본적인 덕목입니다.
산둥 명문가 출신인 그는 주류회사를 창업한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국민정부(중국국민당이 집권하던 중화민국의 과도정부)를 따라 안후이로 옮겨 중학교 과정을 마쳤고, 14살의 어린 나이에 군에 자원입대했습니다. 1949년 국공내전이 한창일 때, 중공군에 포로로 붙잡히는 일도 겪게 되었는데요. 이후 석방되어 타이완으로 넘어왔지만, 국민당 정부의 감시는 오랜 시간 동안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혹시라도 문제가 될까봐 그는 일기 쓰기를 멈췄고 친구들과의 연락도 모두 끊었습니다.
독서를 사랑해온 왕딩쥔 - 사진: 국가문예상
다행히 글쓰기는 그를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장다오판(張道藩) 전 입법원장이 설립한 소설 창작 연구반에 선발되어 6개월 간 본격적인 문학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후 여러 신문에 칼럼을 쓰면서 작가로서의 첫걸음을 내딛었습니다. 그리고 국영방송이었던 중국라디오방송공사에 입사해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매체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대학의 방송학과에서 기사 작성과 라디오 제작을 강의했습니다. 그 시절, 글쓰기는 그에게 생계를 위한 밥그릇이었습니다. 하지만 문학에 진심인 그는 “글로 죄를 많이 지어 후회된다”고 고백한 적이 있는데요. 그래서 45살부터 문학 창작을 직업과 분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 아바지에 대한 사랑을 담은 타이완어 노래, 저우제룬(周杰倫)과 홍룽홍(洪榮宏)이 함께 부른 ‘아빠(阿爸)’, 함께 들어보시죠!
왜 아무도 저 앞에 가시덤불이 있다고 말해주지 않았을까? 🧐
왕딩쥔 전방생의 글쓰기가 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후반생의 글쓰기는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는 한 에세이에서 노인을 저금통에 비유한 바 있는데요. 지금껏 모은 지혜와 경험을 필요한 이들에게 꺼내어 나눠주는 존재라는 거죠. 그는 홍콩 언론(灼見名家)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년에 이르러 전반생을 돌아보니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왜 아무도 저 앞에 가시덤불이 있다고 말해주지 않았을까? 왜 아무도 그 함정을 표시해 두지 않았을까? 왜 아무도 저 우물가에 함께 가자고 초대해주지 않았을까?” 그는 자신이 겪은 깨달음을 후배들에게 미리 알려주기 위해 수많은 작품을 써내려갔습니다.
1978년 이미 타이완 문단에서 확고한 입지를 갖고 있던 그는 아이의 학업을 위해 미국 이민을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낯선 땅에서 뿌리 없는 식물처럼 사람에 대한 흥미와 글쓰기의 동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때 다시 그를 붙잡아준 것은 불교 철학이었습니다. 속세의 덧없음을 깨달은 고요함 속에서 비로소 펜을 들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천인 그는 자신을 “기독교 여권으로 불교의 관광 비자를 받았다”고 재치 있게 묘사했습니다.
알차게 살아온 100년 ✨️
중국에서 타이완으로, 타이완에서 미국으로. 왕딩쥔은 이 긴 여정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중국은 나를 낳고, 타이완은 나를 키우며, 미국은 나를 쓴다” 17년에 걸쳐 완성한 회고록 4부작은 비록 미국에서 작성되었지만, 중국에서 보낸 소년 시절부터 타이완의 삶까지만 담았습니다. 이에 그는 “중국대륙을 떠나 타이완 지룽에 상륙했을 때, 마치 새롭게 태어난 것 같았다. 그러나 미국 땅에 들어섰을 때는 오히려 죽음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끊임없이 떠돌았던 그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지만, 40권의 책을 남기며 인생을 알차게 살아왔습니다. 한 세기라는 긴 세월 동안 단 한 순간도 헛되게 보낸 적이 없었습니다.
왕딩쥔은 아버지 같은 존재로, 자신의 소중한 경험을 다음 세대에게 건네줬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단지 자신의 삶을 쓴 것 같지만, 실은 한 시대의 모습을 기록했습니다. 인간을 위해 진심을 다해 글을 쓰는 작가 왕딩쥔 선생께 가장 깊은 경의를 보냅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王鼎鈞,〈父親的角色〉,明報月刊。
2. 臺灣文學館,「王鼎鈞文學年表」,台灣現當代作家研究資料彙編收存系統。
3. 林欣誼,「作家專訪:《文學江湖》壓陣 王鼎鈞回憶錄4部曲完工」,中國時報。
4. 鄭怡嫣,「王鼎鈞百歲出書 『寫作是癮 了此一生』」,聯合新聞網。
5. 鄭怡嫣,「王鼎鈞百歲出書 專訪談境界也談歸屬:故鄉是我的初戀,紐約是我的婚姻」,世界日報。
6. 張惠,「天教吩咐與疏狂──訪王鼎鈞先生」,灼見名家。
7. 張惠,「一個沒有過去的人──訪王鼎鈞先生」,灼見名家。